나의 아름답기 짝이 없는 작품을 보라. 이는 인간이 질서라 부르며 숭배하며 지탱해온 규율의 대다수가 실은 생명을 잃은 표면, 즉 라텍스로 모든 면이 막혀있는 꽃의 사체에 불과하지 아니한가를 드러낸다. 향을 잃은 아름다움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가치이며, 그 표면적 질서에 무릎 꿇는 행위는 집단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장 정교한 자기기만이다. 잘려나간 머리카락과 쓸모이상의 길게 늘어진 커프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는 아무리 아름답고 정교하게 땋아 엮는다 하더라도, 본질과 존재방향을 잃은 채 죽어있는 사체이다. 작가는 그 허위의 외피를 고정한 채, 그 아래에 안단의 생물학적 통제가 포장되어있고, 콘돔의 포장지는 찢어져있으나 실로써 간신히 봉합되어 존재한다. 이는 한국과 같은 급진적인 근대화를 겪은 국가나 공동체에서 이에대한 부작용으로서 작동하는 집단주의적,그리고 공동체적 습관이 질문 자체를 부정함에 따른 객체의 본질억압이며, 어떻게 죽은 유령적 규율의 관성이 집단주의적 공동체를 조종하고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표상이다. 이러한 점과 더불어서 껍대기 뿐인 유령적 규범과 질서가 앞서고, 본질과 사유가 뒤로 가거나 없어지는 사회가 진정한 데카당스가 아닌가 말하고싶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사유가 생길 수가 없다. 발화를 하기도 전에 자기검열을 하며 사유 자체를 없앤다. 이러한 사회는 부패하여 개인이 제기하는 의견은 묵살되고 검증된 전문가나 전부터 해오던 사람들의 말만 믿으며 그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푸코의 말마따나 규율과 권력은, 또한 이와같이 죽어버린 질서와 본질은 신체의 언어를 길들인다. 그렇기에 나는 안단에 생물학적인 자연스러움과, 터부시되는 것을 붙이고 그 포장을 찢고서 얄팍히 바느질하며 이 모든 자연스러움을 통제하는 통제된 인간상을 겉면의 데카당스와 대비되게 그리며 현대의 허상들을 비판하고 싶었다. 나의 작품은 묻는다. 향을 잃은 질서는 어떻게여전히 숭배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숭배는 어떻게 개인의 내적 가능성을 기계의 윤활유처럼 소모시키는가? 결국 이 옷의 여밈을 여는 행위는, 껍대기에 불과한 표면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존재론적 심연을 응시하는 행위이다. 알을 깨는 행위이고, 드디어 능동적 사고를 통한 본질을 궤뚫은 행위이다. 우리가 아름답다 믿어온 질서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어 있으면서도 집단주의적 망각에 의해 계속 신성화되는 유령적 가치이지 아니하였나. 나는 숭고한 객체의 능동적 영혼이 이 유령적 가치에 의한 전복을 막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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